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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Corona시대의 사랑

  많은 것이 금지되었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이동도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공시설은 출입이 제한되었고 사적만남조차 제한되었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이 났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는 이미 언택트, 비접촉 관계 방식의 삶에 익숙했다. 하지만 자발적 비대면과 비자발적 비대면은 다르다. 팬데믹 이후엔 비대면 방식의 삶에 지쳐 오히려 대면의 자유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스스로를 소외시켰던 포노 사피엔스는 이제 소외가 공동체를 파괴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것은 비극에 대한 공감이다. 격리된 가족과 지인들에게 카톡과 화상 통화로 안부를 묻고, 온라인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안전을 염려하는 바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인 것이다.

   이번 작업은 지난해 에티오피아 사진 여행 중에 어느 오지 마을에서 만났던 한 소녀의 기억에서 착안하였다. 외딴 집에 사는 원주민 소녀가 지붕 위에 올라가 핸드폰을 이리저리 흔들며 신호를 받으려 애쓰던 장면과 온라인을 통한 연대를 시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오버랩 시켜 코로나 시대의 사랑으로 표현했다.

2020 Memories of Sungsu

   SNS를 달구는 개성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리빙샵, 낡은 공장을 개조한 예술 공간에 힙스터가 출몰하고 젊은 사장들의 스타트업이 하나둘 둥지를 틀고 있는 곳, 반면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복잡한 골목 안쪽엔 450여 개의 수제화 생산업체와 원부자재공장에서 나이든 기능장들이 반평생을 넘어 생업을 이어온 삶의 현장이 있다. 반전의 매력을 가진 여기, 바로 내가 사는 동네 성수동의 모습이 그러하다. 

   성수동의 반전매력을 한 컷에 담아보고자 쇼윈도우에 바싹 다가섰다. 쇼윈도우는 가게의 얼굴이자 도시의 얼굴이다. 안과 밖의 모습이 동시에 비치는 쇼윈도우는 결국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다시 반사한다. 쇼룸 안쪽에 디스플레이 된 구두와 마네킹이  쇼윈도에 비친 바깥풍경, 성수동을 찾아온 힙스터들과 오버랩 되면서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실상과 허상들이 새로운 성수동의 이야기를 만든다.  의식하지도 않았고 본 적 없는 새로운 성수동이 탄생하는 것이다.  

 

 

 

2020. 우리 동네 아이들 

   에티오피아의 남단, 케냐와의 국경 부근 오모밸리에는 다양한 부족민들이 여전히 전통생활 방식으로 살고 있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며, 해가 지면 소가죽이 바닥에 깔린 흙집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잠을 잤다. 전기, 수도, 컴퓨터와 같은 문명의 혜택은 드물고 교육과 의료 환경은 열악했다. 거친 땅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맨발은 긁히고 상처투성이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혀있었다. 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마을 가이드는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50일간 내가 본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었다. 어디든 아이들은 많았고 활기찼다. 순박한 얼굴, 강한 눈빛엔 인류의 조상 ‘루시’의 후예라는 자존감이 남아있었다. 모론다바에 사는 아이들은 이른 새벽 떠오르는 해와 함께 울퉁불퉁한 흙길을 맨발로 걸어 학교에 갔다. 바오밥 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친구, 형제들과 함께 학교 가는 길엔 웃음꽃이 피어났다. 가난과 남루한 행색은 아프리카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결핍이 풍경의 전부는 아니다.

 

   1884년 베를린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선을 그어 아프리카를 재단했다. 언어와 종교, 생활양식을 무시하고 같은 종족을 나누고 다른 종족을 한데 뭉친 분할 통치는 정치, 사회적 불안을 배태했다. 종교와 부족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테러는 아프리카 대륙을 피로 물들였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는 그의 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에서 삶의 고통과 가난, 지배층의 부정과 압제에 굴하지 않고 힘으로, 사랑으로 위대한 저항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그의 글은 198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문학으로써의 보편성을 획득했다.

 

   나는 네모반듯한 거울을 들어 나지브가 사랑한 우리 동네의 아이들과 자연, 이들이 이룩한 과거의 문명과 현재의 일상을 기록했다. 카메라의 눈에 거울을 더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강조했다. 다시 한번 마술적 사실주의의 형식을 거울 작업에 적용하여 일상의 눈이 놓친 것들을 거울의 겹쳐진 틈을 통해 찾아내어 이들의 일상에 깃든 생명력을 다각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나의 거울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거울을 건네주어 충분히 아름다운 자신들의 모습과 조우토록 했다

 

   나의 조상이기도 한 ‘루시’의 후예들, 인류의 유년기를 거친 아프리카-우리 동네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역사의 정오가 오기를 바라면서 힘들었던 거울 작업을 즐겁게 이어갔다.

 

 

 

2019 아르고스의 눈 

 

   유년 시절 나는 괴상한 이야기들과 그림에 끌렸다. 연금술사나 마법사들, 실존하지 않는 동물과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 만화경 속의 세계에 황홀했다. 마그리트(René Magritte)나 에셔(M.C.Esche)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이러한 흥미로움의 연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순환적 시간관, 다층적 공간관을 표현한 이들의 작품은 내 의식 깊이 자리 잡았다.

 

   2018년부터 거울을 이용하여 다양한 세상 보기를 시도했고 이것은 진지한 실험이자 즐거운 유희였다. 거울을 사용해 이미지를 끌어들이거나 변형시키기도 했고, 여러 장의 거울을 이용해 내러티브를 만들기도 했다.

 

   2019년 4월과 5월 63일간 남미대륙을 여행하면서 거의 편집증적으로 거울 사진에 천착했다. 거울을 통한 바라봄으로써 외눈박이 키클롭스에서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로 바뀌어 한눈에 볼 수 있는 일상의 시각 범위 너머에 있는 공간을 사진에 끌어들였다. 공간을 접거나 휘고, 반사해서 이미지를 확장하거나 엉뚱한 곳에 감금시키거나 증식시켰다. 착시효과에 의한 시간의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3차원 공간과 단선적 시간 개념을 비틀어보았다. 객관적 성질에 해당하는 사물의 형태, 수, 크기, 위치를 거울 작업이란 마술로 가변적 성질로 바꿈으로써 공간과 시간을 주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문학적 기법인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의 사진에의 적용이라 할 수 있다. 마르케스는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현실 세계의 인과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통하여 가상의 도시 마콘도(Macondo)를 창조했다. 나의 거울 이미지에는 실상과 허상이 초현실적으로 교묘하게 결합 되어 있다. 허구와 현실이 맞물려 있는 지점에서 거울로써 실상과 허상을 격리하고 있는 벽을 제거하여 제3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현실의 영역에서 가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현실 공간과 가상공간으로의 자유로운 유영의 경험은 대상 간의 융합에 대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리라 기대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예술에서 거울을 통한 형식과 내용의 파격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을 다시 바라보고자 노력했고 이 즐거운 유희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듯하다.

 

2019 마콘도

 

   마르케스는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현실 세계의 인과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통하여 가상의 도시 마콘도(Macondo)를 창조했다. 거울 이미지에는 실상과 허상이 초현실적으로 교묘하게 결합 되어 있다. 사진가로서 허구와 현실이 맞물려 있는 지점에서 거울로써 실상과 허상을 격리하고 있는 벽을 제거하여 제3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2019 Next

   우리에게 직면한 환경문제를 거울로 들여다보았다. 인류출현 이전의 자연과 인류출현 이후의 현재, 이다음에 다가올 미래를 거울, 가면, 색(色)이란 메타포로 표현해보았다. 거울은 진리를 드러내는 창의 역할이며 휘어진 거울은 진실을 왜곡하고 분절시키기도 한다. 가면은 인간의 모습이며 진실을 숨기는 수단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상의 색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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